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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인] ep5. 천재 작가 김유정, 짧고 격정적인 삶


어린 시절과 몰락한 유년

김유정은 1908년 강원도 춘천에서 대대로 유복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일곱 남매 중 막내였으며, 어릴 적엔 “금수저”로 불릴 만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형 김유근이 재산을 탕진하며 집안은 몰락했고, 김유정은 눈치밥을 먹으며 친척 집을 전전하는 유년기를 보냈다


병약한 청년,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김유정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결핵이 발병해 폐와 장, 항문 등에 질환이 퍼졌고, 결핵성 치루와 장염, 늑막염 등으로 고통받았다.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건강 악화로 두 달 만에 자퇴했다. 삼촌이 적십자 병원 의사였지만 치료는 제한적이었다. 그는 피를 토하고 기침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텼다.


가난과 고독 속에서 꽃핀 문학

몸이 아픈 와중에도 김유정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친구 안국선의 권유로 시작된 문학은 그의 삶의 돌파구였다. 1933년 첫 작품을 발표하고,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정식 등단했다. 단 2년간 30여 편의 작품을 남기며 ‘천재 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그가 문학에 몰두한 시기와 건강이 가장 악화된 시기는 정확히 겹쳐 있었다.


치명적인 사랑과 좌절

김유정은 20대 초반, 목욕탕 앞에서 우연히 본 유부녀 박록주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녀의 모습은 어린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를 연상케 했고, 그에게 집착의 대상으로 자리잡는다. 공연장과 집 앞을 맴돌고, 편지를 보내는 등 스토킹에 가까운 행동을 했다. 박록주는 결혼 사실을 밝히며 정중히 거절했고, 김유정은 이 거절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후에도 문학 잡지에서 동문인 박봉자의 글을 읽고 운명을 느껴 일방적으로 30통 이상의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이 또한 박봉자의 오빠 박용철 시인의 개입으로 무산되었고, 김유정은 더욱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죽음을 앞둔 천재의 고백

김유정은 생의 마지막 시기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일어나기조차 어렵다. 돈이 생기면 닭을 삶아 먹고 살모사를 구워먹겠다”고 썼다. 실제로 그는 민간요법에 의존해 뱀술을 담그고, 소의 고환을 먹는 등 회복을 시도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치료 대신 술을 택했고, 이는 병세를 악화시켰다.


스물아홉, 너무 이른 작별

1937년, 김유정은 결핵으로 사망했다. 향년 29세였다. 그는 자신의 책상에 ‘겸허’라는 단어를 남겼다. 질병과 고통,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낮추며 글을 썼던 김유정. 그의 삶은 짧았지만 문학은 길게 남았다. 그가 남긴 “봄봄”, “동백꽃” 등 해학과 슬픔이 공존하는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김유정은 한국 문학사에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천재’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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